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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市指定:史跡】「乾隆三十六年大波」碑

「乾隆三十六年大波」碑

〔けんりゅうさんじゅうろくねんおおなみひ〕

与那覇前浜後方の丘陵地(俗称:前山)の中に高さ64cm、幅29cm、厚さ14cm、サンゴ石灰岩を加工した石碑が台座に据えられている。表の碑文の右側は、「乾隆三十六年三月十日大波」、中央は「宮国新里砂川友利」と判読できる。この石碑は、乾隆36年3月10日(新暦1771年4月20日)に発生した石垣島南東沖の海底を震源地とする大地震(推定マグニチュード7.4)のあとに襲ってきた大津波、いわゆる 「明和の大津波」による犠牲者を弔うために建立されたものである。
『球陽』等の資料によれば、宮古では地震後まもなく続けざまに三度、津波に襲われ、波の高さは12~13丈(約36〜39m)、3丈5尺(約10.7m)、2丈5尺(約7.7m)にも達したとされる。この大津波による宮古での被害は、多良間、水納を含む12ヶ村に及び、死者は2,548人にも上ったと記録されている。特に被害が甚大であった宮国、新里、砂川、友利の犠牲者の多くが与那覇の前浜に流れ着き、その遺体は前山に合葬されたと伝わる。それを示すものが「乾隆三十六年大波」碑である。
「乾隆三十六年大波」碑は、大津波による甚大な災害を示す、県内唯一の石碑である。

【Designated by the City:Historic Site】Cenotaph for the Victims of the Tsunami in the 36th Year of the Qianlong Era (1771)

In the hills behind Maehama, Yonaha (commonly known as Maeyama) is a coral limestone monument that stands on a pedestal, measuring 64cm in height, 29cm in width, and 14cm in thickness. On the right side of the inscription at the front of the monument, one can decipher, “Kenryu Sanju-roku Nen San-gatsu Toka Onami (Cenotaph for the Victims of the Tsunami of March 10 of the 36th Year of the Kenryu or Qianlong era)” and at the center are the names, “Miyaguni, Shinzato, Sunagawa, Tomori”. This monument was erected as a memorial for the victims of a huge tsunami that followed a major earthquake (an estimate magnitude of 7.4) on March 10 of the 36th year of the Qianlong Era (April 20, 1771 in the Gregorian calendar), also known as “the Great Tsunami of the Meiwa Era,” with its epicenter at the seabed off the southeastern coast of Ishigaki Island.

【市指定:史跡】「乾隆三十六年大波」碑

與那霸前濱後方的丘陵地(俗稱:前山)上,有一座高64公分、寬29公分、厚14公分,由珊瑚石灰岩加工而成的石碑,屹立在臺座之上。碑文正面右側刻有「乾隆三十六年三月十日大波」幾個字,中央刻有「宮國新里砂川友利」幾個字,可以判讀出。於乾隆36年3月10日(西元1771年4月20日),以石垣島東南海上的海底為震源,發生了強大地震(估計震級為7.4級),隨之引起的巨大海嘯,即是所謂的「明和大海嘯」。這塊石碑即是為弔祭,在海嘯中喪生的死難者而建立的。據《球陽》等文獻資料中記載,宮古在地震後不久又經歷了三次海嘯,浪濤分別高達12~13丈(約36〜39公尺)、3丈5尺(約10.7公尺)、2丈5尺(約7.7公尺)不等。另有數據記錄,宮古地區在這次大海嘯中,括多良間和水納在內一共有12個村落,遭受巨大損失,死者多達2548人,其中宮國、新里、砂川、友利等地受到的災害尤其嚴重,許多死者的遺體漂流至與那霸的前濱,後來被合葬在前山。「乾隆三十六年三月十日大波」碑上記錄的就是此事。「乾隆三十六年三月十日大波」碑是縣內唯一的一座,描述了因大海嘯導致巨大災害的石碑。

【미야코지마시 지정:사적】“겐류36년오나미(乾隆三十六年大波)”비석

요나하 마에하마 후방의 구릉지(속칭: 마에야마) 에 높이 64cm, 폭 29cm, 두께 14cm의 산호 석회암을 가공한 비석이 설치되어 있다. 전방의 비문 우측에는 “겐류(乾隆) 36년3월10일 오나미(大波)”, 중앙에는 “미야구니 신자토 스나가와 도모리(宮国新里砂川友利)”라고 판독되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 비석은 겐류36년3월10일(신력 1771년4월20일)에 발생한 이시가키섬 남동쪽 앞바다의 해저를 진원지로 하는 대지진(추정 매구니투드7.4) 후, 몰려온 커다란 쓰나미 이른바 “메이와(明和)의 대 쓰나미”로 인한 희생자를 애도하기 위해 건립된 것이다.
“규요(球陽)” 등의 자료에 따르면 미야코에서는 지진 발생 후 연달아 세 번, 쓰나미가 몰려왔다. 파도 높이는 약 36〜39m, 약 10.7m, 약 7.7m에 달했다고 한다. 이 쓰나미로 인한 미야코의 피해는 다라마, 민나를 포함한 열두개 마을에 달하였고, 사망자는 2,548명이나 된다고 기록되어 있다. 특히 피해가 컸던 미야구니, 신자토, 스나가와, 도모리의 희생자의 대부분이 요나하의 마에하마에 흘러 들어와, 그 시체가 마에야마에 합장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를 보여주는 것이 “겐류36년 오나미”비석이다. “겐류36년오나미”비석은 대 쓰나미로 인한 심대한 재해 상태를 보여주는 오키나와현 내의 유일한 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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